2010년 9월 19일 일요일

아이들의 '몰입' 원한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라

몰입은 동기부여와 목표의식에서 나온다



“나는 아이들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특히 규칙을 깨고 지침을 따르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그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뭐든 잘할 아이들이다.” (마이클 델)


“삶에서 당신의 사명을 찾는 것은 당신 마음이 깊은 희열을 느끼는 것과 세상이 깊은 허기를 느끼는 것 사이의 교차점을 찾는 일이다.”(프레드릭 비크너)



학벌에 대한 환상이 강한 한국이다 보니 하버드대 학생이라면 비범한 천재들이나 별종들만 다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필자가 부탁받은 이 원고 주제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하버드대 학생이라고 해서 대단한 천재들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이 글의 주제와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몰입의 달인들’만 모여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모두 그렇지는 않다고 해도 하버드대 학생들 가운데 체계적으로 잘 몰입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유학 전 국내 한 대학원에도 적을 뒀던 필자의 경험으로는 두 학교 학생들의 평균적인 몰입도가 다름은 분명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몰입의 원재료는 흥미와 열정, 그리고 의미와 소명


그럼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몰입의 뜻을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표현으로 유명해진 flow가 아닌 한자 沒入이나 영어 표현 immersion으로 생각해 본다면 몰입이란 뭔가에 깊이 빠져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상태에서 일에 빠져드는가. 그 일을 좋아해야 한다. 워렌 버핏이 “나는 탭댄스를 추면서 출근했다. 그건 엄청난 즐거움이었다”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떤 일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흥미와 열정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그 흥미와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 일이 자신에게 의미가 있을 때, 자신이 진심으로 느끼는 소명과 맞닿아 있을 때 흥미와 열정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필자가 하버드대와 국내 대학에서 공부할 때 느꼈던 학생들의 몰입도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의미가 무엇인지, 내가 평생에 걸쳐서 추구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천양지차다.


케네디스쿨에서 수학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차이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 가운데 평균적으로 한국 학생들은 매우 똑똑한 편이다. 수업 준비도 잘하고 개인별로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성적도 좋은 편이다. 이것은 국내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에게는 열정이 부족하다. 자신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미국 학생들을 비롯해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바가 뚜렷했다. 저개발국가의 경제 발전을 돕겠다는 슌스케, 에이즈 퇴치를 위해 일하겠다는 크리스틴,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미셀, 3차원 홀로그램 영상 개발에 푹 빠져 있는 크리스, 아시아계 소수인종의 권익 향상을 위해 일하겠다는 피나, 동북아 평화와 협력 증진을 위해 일하겠다는 재미교포 피터 등 꿈은 각양각색이지만 대체로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바는 뚜렷한 학생들이 많았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국내 학생들


반면 국내 대학원에서 경험했던 한국 학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바를 명확히 결정하지 못하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보다는 남들이 볼 때 ‘괜찮은 직장’을 목표로 삼는 학생들이 많아 보였다. 획일적 기준이 작용하다 보니 대학이나 대학원 과정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지적 열정을 불사르기보다는 ‘스펙 쌓기’에 몰입(?)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물론 이 글에서 길게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부동산 거품 등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생산하지 못하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상황도 매우 크게 작용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하버드대 학생들은 훨씬 더 분명하게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기에 훨씬 더 강한 열정과 에너지를 분출한다. 또한 자신의 의미와 소명을 찾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다고 단순히 공부만 파고드는 것도 아니다. 학생들은 매우 다양한 과외 활동이나 이벤트나 학술행사, 모임 등에 참여한다. 국내처럼 책만 파고 수업만 열심히 들어 학점 잘 받는 유의 ‘범생이’ 스타일은 오히려 매우 드물다.


예를 들어 사회학 박사과정에 진학하려는 캐서린은 관련된 수업도 열심히 찾아 듣지만 저소득층 거주지의 중학교에 나가 수업 자원봉사를 하고, 관련된 학생저널의 편집진으로도 활동하는 식이다. 여름에는 관련 비영리단체나 연구기관, 국제기구 등에서 인턴을 하기도 한다. 그에게 이들 활동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과정이면서 그것이 자신에게 맞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다. 또한 서로 다른 활동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가진 목표를 향해 유기적으로 연결된 활동들이다. 그렇기에 캐서린은 자연스레 그 모든 활동들에 몰입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6대륙 최고봉 오르기’ 프로젝트의 경우


또 다른 예를 들자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생들과 비즈니스 스쿨 학생들이 연합해 ‘6대륙 최고봉 오르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언뜻 보면 좀 스케일이 큰 등반 모임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전혀 다르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학생들 네트워크를 활용해 세계 각국에서 소아암 퇴치를 위한 기금 마련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였다.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기금을 모금하고, 홍보하고, 마케팅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사람들을 조직화해나가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물론 같은 뜻으로 뭉친 학생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도 쌓게 된다. 뚜렷한 목표 의식 아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현실화하는 방법을 실천적으로 배우게 되는 모임이다. 당연히 학생들의 참여도와 몰입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같은 학생들의 몰입이 천부적인 능력을 가진 학생들만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하버드대를 비롯해 미국 유수의 대학과 대학원들은 신입생들을 뽑을 때부터 각종 수학능력점수 및 추천사와 함께 학생 개개인의 지원 동기와 수학 의욕을 파악하기 위해 에세이를 쓰게 한다. 이 에세이에서 자신이 왜 해당 대학에 가야하는지, 그 학교에서 뭘 배우고 싶은지, 그것이 자신의 향후 목표를 이루는데 왜 필요한 과정인지, 자신이 이전에 살아온 과정에서 왜 그 같은 주장이 진실성이 있는지 등을 입증하지 못하면 아무리 시험 성적이 우수해도 하버드대 입학 허가는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몰입의 원재료인 동기부여와 목표의식, 열정을 이미 입학 심사 때부터 강조하는 것이다.


직원들 다그치기보다 몰입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시스템 만들어야


입학 당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입학하고 나서도 뛰어난 교수들로부터 폭넓고 심도 있는 지적 자극을 받게 된다. 또 각 대학과 대학원은 학생들이 다양하게 경험하고 관심과 열정을 유발할 수 있는 크고 작은 각종 세미나, 포럼, 모임, 프로젝트, 행사 등을 수도 없이 진행한다. 각종 학생 활동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필자가 수학했던 케네디스쿨의 예를 들면, 하루에만 최소 수십 개의 각종 학술 모임과 행사 등이 열렸다. 또 학교측은 ‘코커스’라고 불리는 수백 개의 각종 동아리와 수십 종의 학생저널 발간을 지원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학생들이 각종 학문적, 현실적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한 국내 대학과는 다른 모습이다.


국내에서는 기업을 비롯해 어떤 조직이든 직원들의 자발적인 몰입을 이끌어내기보다는 몰입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몰입은 개별 조직 구성원의 열정과 목표의식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조직원들의 열정과 소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분위기와 시스템이 뒷받침될 때 더욱 활성화된다. 조직의 리더들은 ‘왜 몰입하지 않느냐’고 다그치기보다 구성원들의 몰입을 이끌어내기 위해 동기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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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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